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 정치학 (문단 편집) == 반응 == 먼저 세간의 반응부터 살펴보자. 1970년 8월 31일 《[[타임]]》 지는 본서를 특집 기사로 다루면서 밀렛이 "여성해방의 [[마오쩌둥]]" 이라고 보도했다. 동년 12월에는 밀렛이 레즈비언이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져서 "모든 페미니스트들은 레즈비언이다" 라는 통념이 강해졌으며, 당시 [[전미여성기구|NOW]]의 글로리아 스타이넘(G.Steinem)은 밀렛을 옹호했지만 NOW 뉴욕지부는 동성애자의 소속을 거부하여 밀렛이 퇴출당했다고 한다. 또한 역자에 따르면(본서 p.737), 본서에서 비판 받았던 노먼 메일러는 《The Prisoner of Sex》 에세이에서 자신의 [[남성우월주의]]를 해명하면서 본서에 대해 "부정확하며,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방식으로 인용하고, 단순하고 오류투성이인 논리" 라고 치부했고, 밀렛에 대해서도 "문학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으면서 마구잡이로 들쑤셔 대기나 한다" 고 짜증을 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회과학]]은 편향됐다고 할 땐 언제고 Masters & Johnson(1966)[* 성의학, 성심리학 관련 연구의 기념비적 성과로, [[성 소수자]] 담론을 파다 보면 피해갈 수 없는 거대한 문헌이기도 하다. 당장 [[나무위키]]의 수많은 [[성 관련 정보]]들이 이 연구에 빚을 지고 있으며, [[오르가즘]]의 단계 이론이나 여성의 멀티 오르가즘, [[애액]]의 분비 등에 대한 상식들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이 문헌은 사회적으로는 프리 섹스 운동을 촉발시켰으며, 앤 코에트(A.Coedt)와 같은 여성 운동가들은 "여성의 쾌감은 [[질(신체)|질]]에서 오는가, 아니면 [[클리토리스]]에서 오는가" 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게 되기도 했다.]의 연구를 자기 근거로 삼는 건 또 뭐냐" 고 비판하기도 했다고. 다음으로 학계의 반응을 살펴보자. [[중앙대학교]]의 [[여성학]] 교수인 [[이나영(교수)|이나영]](2009)은 자신의 [[논문]]에서[* 이나영 (2009).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섹슈얼리티--역사와 정치학의 이론화. 경제와사회, 82, 10-37.] 본서에 대해 세 가지 의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첫째,''' 가부장제를 모든 문화와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내적 식민화" 라고 설명함으로써, 남녀관계를 정치적 영역으로 개념화한 최초의 사례이다. '''둘째,''' 남성의 여성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가부장제가 여성성이라는 '젠더' 개념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함으로써, 젠더 이론을 가부장제와 연결했다. '''셋째,''' 가부장제는 남녀관계를 사적이고 비정치적인 것으로 이해하지만, 실상 남녀관계는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정치학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는 저 캐롤 하니쉬(C.Hanisch)의 유명한 슬로건이기도 한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the political)의 메시지를 뒷받침하게 되었다고 본다. 영미문화 연구자 패트릭 브란틀링거(P.Brantlinger)에 따르면,[* Brantlinger, P. (2013). Crusoe's footprints: Cultural studies in Britain and America. Routledge.] 밀렛은 가부장제가 계급, 인종 등의 다른 것들보다 '''더 근본적이고 선행하는 억압의 형태'''라고 주장했다는 데 그 사상적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다른 평론가들처럼, 그 역시 본서에 대해서 가부장제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구성물로서, 남녀관계를 결정짓는 불변적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평가한다. 이는 이 무렵의 페미니스트들이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에 대해 수정주의를 택하거나[* 예컨대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 은 마르크스주의를 페미니즘적으로 수정하려는 시도로서, 여성의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조건이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억압을 출발시켰다고 주장했다. 이 관점은 헤스터 아이젠슈타인(H.Eisenstein) 등에게 "생물학을 바꾸면 사회가 바뀐다는 말이냐" 고 비판받기도 했다.] 아예 거부하는 두 가지 노선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밀렛의 경우는 그 중의 후자였다. 본서에서 꾸준히 지적했듯이 그는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 모두 여성의 억압 문제에 대해 무관심해 왔다고 비판했다. 해외의 [[사회학]] 분야에서 확인되는 서평이 한 건 있는데, 패트리샤 클로우(P.T.Clough)는 《Sociological quarterly》 에 발표한 자신의 [[논문]]에서[* Clough, P. T. (1994). The hybrid criticism of patriarchy: Rereading Kate Millett's sexual politics. Sociological quarterly, 35(3), 473-486.] '''본서 이후로 문예비평과 [[사회과학]]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게 되었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현재진행중'''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본서는 현실과 환상, 역사와 픽션, [[키배]](…)와 학문적 토론, 비평과 [[연구]] 사이의 관계를 바꾸어 놓았다. 자신의 성실한 비판을 통해, 저자는 본서가 "의도치 않게"(inadvertently) 비평의 영역과 사회과학의 영역 사이의 국경을 흐려 놓았고, 자칫 한계가 될 수 있었던 이 문제는 후속 페미니스트들의 많은 작업들로 인하여 이제는 사회현상에 대한 활발한 문예비평적 접근의 길을 열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심지어 이제는 사회학자들도 이런 텍스트의 독해를 통해서 사회를 읽어낼 준비를 해야 한다고 제안하기까지 한다. 클로우에 따르면, 이전까지 소설들은 단순히 문학적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그 문학성만이 비평과 판단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하지만 밀렛은 소설이 그 시대의 문화를 반영한 텍스트라고 보았고,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문학은 곧 가부장적 현실을 투명하게 반영하고 박제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밀렛은 문학에서 드러나는 가부장제를 고발하고 비판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회과학]]을 가져왔다. 가부장제, 즉 남성으로서의 억압적 삶의 양식과 여성으로서의 종속적 삶의 양식은, 밀렛의 사회과학 연구들을 통해서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문화적 소산으로 입증되어야 했다. 하지만 사회과학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담론적 권위(discursive authority)를 갖는데, 밀렛은 이를 연구대상에 대한 무관심한 설명(disinterested explanation)으로서만 휘둘렀다는 것이다. 2부에서 밀렛은 사회과학이 기능주의와 [[정신분석학]]으로 인해서 편향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그렇다면 이런 오염된 접근을 어떻게 문예비평의 도구로 삼을 수 있을지에 대한 해명도 필요하다. 하지만 밀렛은 그것 역시 간과했다고 클로우는 지적한다. 밀렛이 이런 문제를 통찰하지 못한 것은 클로우가 보기에 분명하다. 3부에서 문학의 위치와 사회과학의 위치, 서로 간의 관계는 갈수록 불명확해져 가고 서로 섞여든다. 3부에서 밀렛은 밀러와 메일러 등의 작품들을 비평하면서, 이제는 '''문학이 단순히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더 나아가 반혁명적인 이념의 공고화를 이끈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리고 주네의 문학은 가장 직접적으로 사회과학과 문학의 영토를 서로 흩뜨려 놓고 있기까지 하다. 밀렛의 진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본서를 마지막까지 읽을 경우 독자가 자체적으로(…) 양자의 의미와 역할을 정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문학]]은 현실의 단순한 반영이라기보다는 현실이라고 여겨지는 것의 각 단계들 내지 장면들을 조직화하는 것이고, [[사회과학]]은 현실이라고 여겨지는 것 중의 관심 있는 대상을 정당화하고 규범화하는 기능을 한다는 맥락임을 알 수 있으며, 이렇게 본다면 '''문학과 사회과학은 사실상 차이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 문제 때문에 클로우는 본서가 나온 이후 [[인문학]]과 [[사회과학]] 양쪽의 여성 이론가들 모두에게 엄청난 숙제가 부여되었다고 회고한다. 사회과학 분야의 여성 이론가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여성들의 "진정한"(true) 섹슈얼리티를 밝혀낼 수 있을지 논의했으며, 인문학 분야는 남성 작가들의 작품세계에서 묘사되는 여성들의 왜곡된 섹슈얼리티를 찾아내어 고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본서는 인문학 분야에서 [[블루 오션|새로운 활동분야]], 즉 '''사회문화 평론'''이라는 지평을 열었다.[* 우리나라에도 프랑스 철학이나 언어철학, 탈식민주의 등을 전공한 인문학자들이 사회현상에 대해 TV프로그램이나 영화, 게임, 광고, 웹 커뮤니티 등을 활용하여 인문학적 비평을 시도하는 사례는 전혀 드물지 않다.] 문학작품의 문화적 맥락은 외적인 요소가 아니라 이제는 내적인 요소가 되었으며, 따라서 사회과학의 [[이론적 조망]]을 필요로 하지 않은 채 자기 고유의 문예 이론이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문헌성"(literariness), 즉 어떤 글쓰기가 그 담론에서 갖는 권위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비판이론(critical theory)의 발달이나 제3세계 페미니즘의 담론에도 공헌했다고. 클로우는 이상의 논의에 더하여 개념상의 한계점도 함께 지적했다. '''본서에서 [[가부장제]]는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가부장제라 함은, 즉 아버지(父)가 가장(家長)으로서의 권위를 갖는 가족 제도를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본서에서 밀렛은 이를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상태로 모든 "남성 지배"(male domination)의 사례를 '''전부 가부장제로 치환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가 가장이 아닌' 사례들이 본서에서 일부 섞여들게 되었고, 그로 인해 후대의 페미니스트들이 이를 일일이 찾아내어 수정해야 했다(…)는 것이다. 남성의 지배를 [[만악의 근원]]으로 간단히 취급하려는 본서의 시도는 학술적인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보기에는 큰 결함이 되어서, 본서는 남성 지배에 대한 학술적 이론화도 실패했으며 이로 인해 이론의 이념적 위치를 명확히 하지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